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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甲乙) 유감




갑을(甲乙) 유감

잘 나갈 때 머리를 숙여라



"잘 가노라 닿지 말며, 못가노라 쉬지 마라.
부디 그치지 말고 촌음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리."


 
빈손으로 돌아갈 인생이기에 세어보고 따지지 말고 그저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가라는 말이다. 최근 불거진 남양유업과 베이커리 회장 폭행사건, 포스코 임원 기내 소란 사건을 보며 좀 더 자기답고 겸손하게 지낼 수는 없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이 구절을 챙겨봤다.
살다보면 내가 조금 유리할 때가 있다. 그러면 보통 우쭐거리게 된다. 반면 불리할 때도 있는데, 이때는 굽실굽실 하게 된다. 대개의 세상살이가 그렇다. 그런데 유리하다고 우쭐대고 불리하다고 굽실거리기를 반복하는 사람 곁에는 함께 동고동락할 사람이 없다. 힘들 때 결정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위험에 처했을 때 답이 없게 된다. 사람은 처음과 끝이 같아야 상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좋거나 반대로 나쁜 상황이 닥쳐도 자기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간에 남양유업, 배상면주 등의 기사를 봤다. 남양유업도 예전에는 아마 대리점 사장들에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니 고맙다고 고개를 열 번도 넘게 굽실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잘 팔아준 덕분에 물건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고 시장 점유율도 높아졌을 것이다. 덩달아 제품개발비도 넉넉히 책정할 수 있어 좋은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을 테고, 그러니 시장에서는 더욱 좋은 반응을 얻어 회사는 커갔을 것이다. 이렇듯 회사 인기가 올라가자 대리점 하겠다는 사람은 늘어났고 급기야 회사의 마음가짐도 변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우쭐대고 맘대로 하고 싶은 맘이 생겼을 것이다. 자기들이 마치 윗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물건 팔아주는 대리점의 고마움을 잠시 잊어버렸을 것이다. 대리점을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흔들어대다 최근과 같은 일이 생겨났다고 본다.


‘팔아주세요’와 ‘팔아야 돼’의 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산업공구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짐작된다. 예전에 제품이 안 팔릴 때는 ‘이것 팔아주세요. 저것도 팔아주세요.’라며 고맙다고 상까지 줘가며 열성을 쏟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판매가 잘되면 언제 보았냐는 듯 해버린다. 우리 물건 주는 것이 어디냐는 태도마저 보인다. 이쯤 되면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경우다.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고 혹은 실적이 좋지 못하다고 찬밥 취급을 당한다. 필자 회사도 그럴지언대 더 작은 대리점이야 얼마나 힘이 들까 싶다.
또 반대로 유통사 또한 영업력이 좋다고 제조사며 다른 거래처에 힘을 행사하려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거래고객을 협력관계로 보지 않고 ‘을(乙)’로만 보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나는 갑이요 당신은 을이기 때문에 내말을 들으라는 태도이다. 나는 을이고 당신은 갑이기 때문에 미워도 참아주고 다음에 내가 힘이 세지면 그때는 두고 보자는 식이다.



 

갑을은 없다 … 우리는 모두 협력자
 
최근 여러 회사에서 이제부터 ‘갑을(甲乙)’이라는 말을 없앤다한다. 계약서에‘갑을’이라는 표현대신 그냥 회사나 사람 이름 혹은 약칭으로 대신한다는 것이다. 갑을은 권력의 높낮이 혹은 주인과 노예 같은 상하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온라인이다, SNS다 하며 오픈된 세상에서 높고 낮음이 어디 있고, 귀하고 천함이 어디 있겠나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나 역시 사람귀함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직원의 노하우와 그간의 공로를 몰라보고 ‘당신 없이도 할 수 있다, 왜 이리 일을 못하느냐’고 타박한 적은 없는지 가슴이 뜨끔하다. 지금은 회사가 커졌다고 예전부터 일해오던 직원들을 섭섭하게 하진 않았나 생각해 본다.
조금 잘된다고 남을 무시하고 조금 안된다고 불평을 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성공하는 것보다 오래오래 롱런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내친 김에 우리직원들에게 이 말도 하고 싶다.
‘예전에 그렇게 친절했던 책임직원은 어디
갔나?’라고 묻고 싶다. 유통 덩치가 커졌다고 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나 변할 수 있기에, 그저 모두가 협력자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생산제조와 유통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유통사와 유통사와도 당연히 협력관계다. 서로 간에 배려하고 잘 이해해야 고객을 놓치지 않는다. 남을 성공시킬 수 있어야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잘 나갈 때나 못나갈 때도 한결같아야 거래 신뢰가 생긴다.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조사는 유통사를 믿고 물건을 만들 수 있고 유통사는 제조사를 믿고 제품을 팔수 있을 것이다. 젠틀맨들이 많아지는 우리 공구업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