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공철두] 9. 지는 골프를 배워라 - 납품영업 천태만상
#1. 좁아터진 가게 “당황하셨어요?”
납품영업을 시작한지 몇 달이 흐르자 매출은 눈에 띄게 팍팍 올라갔다. 철두는 매출 현황표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좋았어! 이대로만 성장하면 문제없어! 앗싸,”
“배달 왔습니다~. 어디 놓을까요?”
“에잉? 저기, 아니 거기! 아아니 문 앞에 둬. 고기고기. 내가 알아서 자리 만들게요.”
철두는 배달된 제품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끙끙거린다. 이미 가게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아졌다. 천장에도 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처럼 공구가 주렁주렁 빽빽하게 매달려 있다.
“아놔 짜증이야! 놓을 자리가 없네. 조만간에 코박겠네 코박겠어. 기미씨랑 돌아서다 키스하는 건 시간문제지만... 히힛!!(잠시 공상하다 멈칫) 하지만! 여기서 하면 곤란하단 말이야.”
흘깃 옆집을 보니 신기배는 새로이 커진 가게 정리에 바쁘다. 신기배의 바로 옆 공구상이 사업을 접으면서 신기배에게 가게자리를 넘긴 것이다. 붙어 있던 작은 두 가게가 하나로 합쳐지자 신기배의 가게는 이 공구거리에서도 꽤 큰 가게가 되었다. 이쪽 철두네 보란 듯 가게를 왔다 갔다 하는 신기배를 보니 분통이 터진다. 저놈의 자식은 가게가 커진 것을 자랑 하듯이 보는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무슨 무당 춤추듯 빙글빙글 돌기까지 한다. 간혹 히죽거리는 게 느껴진다. 여기서 지면 정말 공철두는 불이라도 지를 듯 눈에 불이 나온다. 부러우면서도 속이 터지는 철두.
‘두고 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매출만큼은 너보다 높이고 만다. 이제부터는 영업만이 살길이라구.’
#2. 표 나지 않게 져주는 것도 실력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하얀 골프공이 파란 하늘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와~ 공장장님! 나이스 샷! 쭉 뻗어 나간 것이 250야드 정도.”
“예끼 이사람 한 220에서 230정도면 모를까. 골프 드라이버 비거리가 250야드이면 프로야 프로! 허허허”
“아이구 제가 보기에는 우리 공장장님 골프실력은 프로입니다! 헤헤헤 안그래요? 캐디언니?”
철두가 이번에 접대를 하는 사람은 새롭게 영업을 뚫은 공장의 공장장이다. 그래서 철두는 과하게 헤헤거리며 거래처의 공장장에게 아부를 한다. 공철두는 골프를 치면서 거래처의 높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영업을 돈독히 하거나 거래 물품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철두가 하는 것은 골프내기. 사실, 내기가 아닌 뇌물성 골프접대라 볼 수 있다.
“이봐 공사장, 이번에 못 넣으면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기는 거야.”
“지난번도 제가 이겼잖습니까? 이번에도 제가 이깁니다. 얼마 걸까요? 좋다. 50만원? 아니다 아예 100만원! 제가 이번엔 감이 좋습니다.”
“우리 공사장 역시 배포가 커. 허허허”
큰소리를 뻥뻥치는 공철두가 공장장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골프채를 삐끗 움직인다. 그러자 공철두가 친 공이 아슬아슬하게 구멍을 벗어난다.
“아이고 망했네! 졌다 졌어! 캬, 역시 하늘은 우리공장장님 편이네.”
“허허허 우리 공사장 골프 폼은 다 좋은데 마지막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 긴장을 풀고 쳐야지.”
공장장은 아는 지 모르는 지 일단 모른 체 했다.
“두고 보십쇼! 다음 경기 때는 제가 꼭 이길 겁니다. 하하하.”
10만원 내기는 이기고 결정적인 100만원 내기에 져줘야 골프를 칠 줄 아는 거다. 그것도 표시나지 않게,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져줘야 한다. 일명 기술이다. 그렇게 새로운 거래처 공장장에게 봉투를 헌납하는 공철두. 지난번에도 한번 져줬고 앞으로도 몇 번 더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며 공장장에게 공장에서 사용하는 공구 품목 중에 이런 품목을 저희도 하는데 견적서 한번 넣어 봐도 될까요, 하고 조용히 물어본다. 그러자 공장장은 짐짓 못이기는 척 하며 한번 견적 넣어보라고 나직하게 말한다.
#3. 네 눈엔 공장장의 낡은 골프채가 보이지 않더냐?
며칠 후, 납품하는 품목을 손쉽게 늘린 공철두가 공장장실 문을 두드린다. 다음 골프 약속을 잡을 겸 감사인사도 드릴 겸 해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신기배가 공장장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공장장이 번쩍이는 새 골프채를 들고 싱글벙글이다.
“아, 공사장 왔어? 신사장 알지? 같이 옆에서 장사를 한다며?”
“예. 공장장님. 신형 오랜만이야.”
공철두가 신기배에게 말을 걸자. 신기배가 씨익 웃으며 말을 한다.
“아 철두씨. 뭐가 오랜만이야. 늘 우리 큰 가게 옆에서 작은 가게로 작게 장사 하면서 매일 보잖아.”
이 건방진 새끼 말하는 모양 봐라. 철두는 울컥하지만 공장장님 앞이라 큰 목소리는 못내고 웃는 얼굴로 악담한다.
“아이구 그나저나 구색도 제대로 없이 장사하시는 우리 신기배 사장님이 여기는 왠일이래요. 가게에 물건 채우기 바쁘실 텐데.”
“하하 우리 공장장님 골프채가 희귀한 골프채더라고. 구색이랍시고 재고만 쌓아놓는 공사장은 잘 모르는 그런 거야. 그런 골프채 공장장님이 쓰시니까 내 골프채랑 바꿔달라고 사정하러 왔지.”
신기배의 말에 철두가 어이가 없어 공장장이 치던 골프채를 본다. 공장장이 쓰는 골프채는 낡디 낡은 싸구려 골프채다. 저런 꼬질꼬질한 녹슨 골프채가 뭐 어쩌고 어째? 철두는 이놈이 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챈다. 공장장에게 골프채를 뇌물로 써서 영업을 따내려는 거구나. 자신의 거래처에 침범하는 신기배의 행동을 바로 앞에서 본 철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반면 새 골프채를 얻은 공장장은 싱글벙글.
#4. 딸랑딸랑, 철두는 지역모임의 방자!
신기배에게 한 방 먹은 철두는 가게로 돌아와 투덜거리며 일요일에 다가오는 등산 모임을 기대한다. 지역의 공장이나 회사의 임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산모임이다. 거래처의 한 임원과 친해진 덕분에 그런 귀한 모임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동안 가입하고 싶었던 모임이다. 그래서 철두는 모임에 가입하면서 모임회원들에게 돌릴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얼굴을 각인시키고 공구 납품 영업을 하기 위한 밑밥. 가게 이름과 연락처가 수 놓인 수건을 선물로 준비한 것. 모임 회원들에게 돌릴 수건을 차에 실으며 철두가 중얼거린다.
“설마 거기에도 신기배가 오지는 않겠지?”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 법.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며 명함을 돌리는데 얼굴을 드니 신기배가 씨익 웃고 있다. 깜짝 놀란 철두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뭐, 뭐야! 너가 왜 여기에도 있어!”
“에헤이. 늦게 들어온 사람이 먼저 들어와 운영진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너라고 함부로 말하면 쓰나.”
알고 보니 신기배는 철두가 오기 전부터 모임에 가입해 있었고 운영진으로 일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와 쭈뼛거리는 자기와는 달리 사람들과 두루 두루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신기배를 보니 또다시 약이 오르는 공철두. 등산모임에서 회장을 모시고 운영진을 맡아 대소사를 처리하는 신기배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별 볼일 없는 모임도 아니고 지역의 공장이나 회사의 임원들이 참석하는 등산모임에서 운영진까지 하고 있으니 신기배가 저래서 납품을 쉽게 한 것이구나 싶다. 어쨌든 등산을 마치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술이 빠질 리가 없는 일. 음식이 나오고 소주가 짝으로 나오자 신기배가 공철두를 보며 나직히 말했다.
“여~ 신입! 여기 테이블에 술 좀 날라봐.”
‘신입은 니미. 저 얌생이 같은 놈이!’
그런데 운영진을 맡아 일하는 신기배라 주위 눈도 있어 철두는 헤헤 거리며 술을 테이블에 나르고 있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풀 수가 없는 공철두. 그래도 얼마나 기대했던 모임인가. 또 모임의 인원들은 왜 다들 거래처의 사장님들인가. 여기서 치고 박고 싸울 수도 없고, 처음 나온 자리라 언성 높일 수도 없어 철두는 빈 병 치워라 음식 추가로 시켜라 하며 이리저리 명령하는 신기배에게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어, 처음 들어온 사람이 싹싹하게 일도 잘하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예. 회장님. 공철두입니다.”
“그래요. 뭐 알겠지만 나 OO실업의 박대표고 모임 회장이요. 그래. 무슨 일 하시고?”
“예, 회장님. 공구상 하고 있습니다. 대박공구입니다.”
“아아. 대박공구의 공철두 사장이구만. 공구상이면 우리 신사장이랑 같은 업종 아니야? 같은 업종으로 일을 하니 신기배씨랑 절친이 되겠는데? 앞으로 우리 자주 봅시다.”
공철두가 모임의 회장이랑 인사를 하는 것을 지켜본 신기배가 끼어들어 말한다.
“회장님 철두씨 자주 봐도 납품은 저한테서만 받아 주시는 거 알죠?”
“으하하 신기배 이 친구 유머가 있다니깐 으하하. 암암 우리회사는 기배씨한테서만 물건 받는다.”
철두가 납품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기배가 초를 치니 철두는 속으로 씨불씨불 욕이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앞서 나가는 신기배가 부럽기도 했다.
#5. 다양한 정보와 사업노하우를 얻다
비록 신기배가 먼저 와 있는 등산모임이었지만 철두는 지역의 모임을 통해 가게를 더욱 크게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보다 쉽게 얻게 되었고 기대했던 새로운 납품처도 뚫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공구상이 꼭 공구만 하라는 법은 없다. 필요하다면 캔커피나 물과 같은 음료도 납품을 하는 법이다. 구색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그것이 공구든 음료수든 팔아서 돈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철두가 공구상을 하는 이유는 바로 부자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지 결코 공구에 미쳐서 공구가 너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두가 가입한 등산모임에서는 부자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고, 철두는 그런 모임에서 영업 납품 거래처를 얻기도 했지만 사업에 필요한 금융지식이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하우를 얻기도 했다. 학교나 군대 그리고 스승이었던 윤사장은 알려주지 않던 그런 사회지식이었다. 철두가 가게를 확장 이전하려 할 때도 그랬다. 철두가 가게를 확장 이전하려고 한다고 하자. 모임에서 어느 은행의 지점장이 철두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이봐 공사장. 확장이전 하려고 한다고? 은행 빚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지금 세를 얻어서 공구유통업을 하고 있다고 했지 않아?”
“그럼요 지점장님. 대박공구 가게세로 매달 나가는 돈이 있죠.”
“공사장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일을 한다면 매출액이 계속 있을 것 아니겠어? 그런 매달 계속되는 매출액을 보고 내가 지점으로 있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줄 수 있다고. 지금 나가는 월세가 한 달에 백만원이라고 치자. 그런데 대출을 받아 은행 이자와 원금을 합해서 값아 나가는 돈도 백만원이라면 몇 년 뒤에는 확 달라지기 마련이야. 월세는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지만 대출금과 이자를 꾸준히 갚아나가면 결국 공사장은 자기 이름 앞으로 된 가게를 가지게 되는 거라고. 좋은 은행 금리를 소개해 줄 테니까. 시간 되면 우리 은행 지점에 한번 찾아와.”
“아이구 지점장님 감사합니다.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법무사가 철두에게 물었다.
“이봐 공사장. 가게 이전 확장 하려고 한다면서 부동산 경매 매물은 찾아 봤어요?”
“예? 부동산 경매 매물요?”
“그래. 부동산 사무소에서만 가게를 찾지 말고 법원 경매 매물도 있으니까 한번 찾아 봐요.”
“그런데 부동산 경매 낙찰물건도 은행에서 대출로 구입이 가능한가요?”
“어허이 이런 답답한 양반을 봤나. 경매로 낙찰을 받은 주택이나 건물도 시중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해. 대출한도가 주택 낙찰가의 약 60에서 70퍼센트까지였나? 아무튼 그걸 전문용어로 ‘경락잔금대출’이라고도 하고. 에잉. 내 사무소에 한번 와. 내가 한번 알아봐 줄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법무사님.”
공철두는 단순히 납품 거래처를 늘리겠다는 생각으로 가졌던 모임이 사업을 하는데 이렇게 크게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역 모임에 꾸준히 나가자 내가 필요할 때 주위의 도움을 받게 되는 법이었다. 역으로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필요한 공구나 물품이 있다면 반드시 정직한 가격으로 납품을 한 공철두 이기도 했다.
철두는 모임을 통해 생각보다 쉽고 안전하게 확장 이전을 할 수 있었고. 철두의 장점이던 구색을 더욱 크게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확장이전으로 인해 보다 많은 직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어느 덧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큰 공구상 사장님이 된 공철두였다.
(* 다음호에 계속)